1차대전 전투기의 역사(1)

2012 포스팅 자료실 2012.11.12 21:45

1차대전(1914~1918) 전투기의 역사

 

 

 

개요

 

1차대전이 발발하던 1914년에는 아직 전투기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다. 당시 비행기는 언제 멈출지 모르는 불안한 엔진을 탑재한 채 지금의 승용차 보다도 훨씬 느린 100km/h 정도의 최대속도로 하늘을 겨우 날기에도 힘겨웠다. 당시 상황이 이러했기 때문에 전쟁이 발발하자 비행기는 하늘을 날아 적진을 살펴보고 돌아와서 보고하는 순수한 정찰기로서의 임무밖에 수행할 수 없었다.

 

당시 조종사들은 오늘날과는 다른 그들만의 특별한 정신(airmanship)을 지니고 있어서, 비행 중에 적국 비행기를 만나면 하늘을 나는 동료로 여기고 손을 흔들어주기까지 했다. 전투기 애니메이션 <붉은돼지(http://heliblog.tistory.com/372)>를 보면 당시 전투기 타는 사람들의 이러한 특별한 동료의식을 엿볼 수 있다.

 

전투기가 탄생하게 된 것은 정찰기 때문이었다. 전쟁에서 정찰기의 역할이 커지자, 상대국 정찰기의 임무를 방해할 목적으로 탄생한 것이 바로 전투기이다. 초기 전투기는 조종사가 조종을 하면서 직접 권총을 적 정찰기에 조준하여 발사했지만 효과가 미미하여 곧 기관총을 본격적으로 탑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기관총을 탑재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적기를 조준해 격추시키기 위해서는 기관총을 조종사 바로 앞에 탑재하는 것이 가장 좋았지만, 총구 앞에 프로펠러가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사격 시에 총탄이 운 좋게 프로펠러 사이를 뚫고 지나가면 다행이지만 총탄이 프로펠러에 맞게 되면 그대로 추락할 위험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프로펠러에 맞지 않도록 기관총을 좌우로 멀리 떨어지게 장착하거나, 총알을 튕겨낼 수 있는 장갑을 프로펠러에 씌우는 편법을 사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방법들은 조중이 부정확하고 프로펠러가 언제 부러질지 모르는 임시방편적인 해결책이었기 때문에, 전투기는 아직 전장에서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었다.

 

기총동조장치 : http://heliblog.tistory.com/272

 

 

전투기의 탄생

 

공중전을 목적으로 탄생한 최초의 '전투기'는 프랑스의 모란-솔니에(Morane-Saulnier) L 단엽전투기이다. 호치키스(Hotchkiss) 8mm 기관총을 프로펠러 뒤에 고정식으로 장비한 모란-솔니에 L이 등장하자, 유럽 전장의 제공권은 순식간에 프랑스로 넘어갔다.

 

모란-솔니에 L은 호치키스 8mm 기관총을 엔진 덮게(cowling)에 설치하고 총알을 튕겨낼 수 잇는 장갑을 프로펠러에 설치하여 프로펠러가 회전하는 동안에도 기관총을 발사할 수 있었다. 설령 프로펠러에 총알이 명중되어도 잠시 비행 상태를 유지하기 힘들었을 뿐 전투기 자체에는 전혀 손상을 주지 않았기 때문에 기관총을 기수 전방으로 고정 장비할 수 있었던 것이다. 비록 기초적이었지만 이 시스템 덕분에 모란-솔니에 L은 전쟁 초기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었다.

 

항공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전투기는 점차 전쟁에서 결정적인 무기가 되어갔다. 전투기는 공중의 어떤 위협에도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이었고, 공대지 공격은 물론 정찰용으로도 사용할 수 있었다. 적보다 더 강력하고 빠른 전투기를 보유한다는 것은 공중의 패권을 장악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1915년 이후에는 강력한 전투기를 확보하는 것이 참전국 모두의 목포였다.

 

1차대전 초기 전투기

 

포커(Fokker) 단엽기를 신호탄으로 연합군과 동맹군 사이에 치열한 공중전이 시작되었다. 1915년 8월 1일부터 독일의 일명 '포터의 징벌(Fokker Scourge)'이 시작되었다.

 

'포커의 징벌'의 주인공인 포터 E 전투기는 최신 사격장치로 개발된 '동조장치(Synchronising device)'를 당시 최고의 비행 성능을 자랑하던 비행기 모델에 장착한 고성능 전투기였다. '동조장치'란 초창기 전투기 발달사에서 한 획을 긋는 중요한 장치로, 프로펠러가 기관총 총구 앞에 오면 기관총이 발사되지 않게 하는 혁신적인 기계장치였다. 동조장치와 기관총을 결합한 포커 E는 정면에 있는 적기를 지속적으로 사격할 수 있었기 때문에 연합군에게는 매우 위협적이었다. 동조장치라는 무장의 유리한 점 이외에도 포커 E는 기동성이 뛰어나 공중전에서 큰 성과를 거두었다.

 

 

포커 E.I

 

 

포커 E 전투기는 엔진 출력과 날개 길이에 따라 세 가지 모델(포커 E.Ⅰ, 포커 E.Ⅱ, 포커 E.Ⅲ)로 나뉘는데, 그 중에 포커 E.Ⅲ의 성능이 가장 뛰어났다. 포커 시리즈는 1915년 8월부터 마지막 포커 모델인 E.Ⅳ 형이 전선에 투입된 1916년 2월까지 독일이 제공권을 장악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이는 당시 임멜만 선회(Immelmann turn : 수평비행을 하다가 반공중제비를 돌고 다시 수평을 잡기 위해 180도 회전하는 곡예비행)를 개발한 막스 임멜만(Max Immelmann)이나 공중전술의 선구자 오스발트 뵐케(Oswald Bolcke)와 같은 천재적인 에이스들에 힘입은 바가 컸다.

 

 

1차대전 초기 연합군 전투기는 속도가 느리고 무장이 부실하여 독일의 포커 시리즈에 고전을 면치 못했다. 특히 영국의 B.E.2, 비커스(Vickers) F.B.5 나 브리스톨 스카우트(Bristol Scout)와 같은 기체는 포커 E의 날아다니는 표적에 불과했다. 기동성도 떨어지고 후방으로부터의 공격헤 매우 취약하여 많은 희생이 뒤따랐다.

 

1916년 초에 공중의 균형은 다시 연합군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F.E.2b와 D.H.2라는 영국의 두 전투기가 등장하면서 연합군은 균형을 회복해나갔다. 이 영국 전투기들은 속도와 상승률, 조종성 등에서 포커 시리즈를 능가했다.

 

F.E.2b는 2인승 복엽기로 비커스 F.B.5와 유사하게 후방에 프로펠러를 장착하여 기체를 미는 구조였다. 이 기종의 주된 장점은 기관총 2정을 장착하여 기관총 1정을 장착한 포커 E.Ⅲ 보다 화력 면에서 우세하다는 것이었다. 1916년 6월 18일 F.E.2b는 독일 최고의 에이스 막스 임멜만의 포커기를 격추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1915년 여름부터 전선에 투입된 F.E.2b 전투기는 1년 후에 독일의 신형 전투기 알바트로스(Albatros) 복엽기가 등장하면서부터 전선에서 물러났으며, 이후 야간폭격 임무를 수행했다.

 

 

F.E.2b

 

 

 

D.H.2는 영국의 유명한 항공기 제작자 제프리 디 해빌런드(Geoffrey de Havilland)의 두 번째 작품으로, 1915년 7월 첫 비행을 실시했다. 동조장치를 확보하지 못해 기총은 1913년 비커스기의 방식을 따랐고, 기동성은 날렵하고 빠른 편이었다. 처음부터 1인승으로 설계된 D.H.2는 1916년 2월에 영국 육군 항공대 제 24비행대에 처음으로 배치되었고, 이후 프랑스에 제공되기도 했다. 영국 육군 항공대 제 24비행대 조종사들은 이 새로운 복엽기에 익숙해져 드디어 4월 2일에 첫 승리를 기록했고, 4월 25일에는 독일의 알바트로스 전투기가 등장하면서 D.H.2는 1917년 한계가 드러나게 된다.

 

 

D.H.2

 

 

포커에 대항한 프랑스의 유명한 전투기로는 뉴포르(Nieuport) 11과 17이 있다. 이 두 기종은 독일의 초기 제공권을 탈환하여 독일을 점차 수세로 몰고간 전투기였다.

 

뉴포르 11은 크기가 작아서 베베(Baby)라는 별명으로 불렸으며, 이탈리아 마키(Macchi)사에서만 646대 면허생산을 하는 등 수백 대가 만들어져 연합군의 주력기로 활약했다. 구스타브 들라주(Gustave Delage)가 1914년 고든 베네트 컵(Gordon Bennett Cup) 스피드 부문에 참가하기 위한 레이싱기로 기본설계를 시작했다가 1차대전으로 인해 경기가 취소되자 전투기로 탄생하게 되었다.

 

1915년 여름 전선에 투입된 뉴포르 11은 레이싱기답게 속도가 빠르고 기동성이 좋아서 포커 단엽기에 대항이 가능했다. 1916년 2월 베르됭(Verdun) 전투에서 귀느메(Guynemer), 드 로즈(De Rose), 뉭제세르(Nungesser)와 같은 프랑스 최고 조종사들은 뉴포르 11을 타고 적에게 큰 타격을 입혔다. 뉴포르 11은 1917년 여름까지 이탈리아에서 활약했지만, 서부 전선에서는 1916년부터 더 강력한 파워를 가진 뉴포르 16으로 대체되기 시작했다. 뉴포르 16은 2인승 복엽기인 뉴포르 10과 뉴포르 12를 크게 발전시킨 전투기였다.

 

 

 뉴포르 11

뉴포르 17

 

 

그해 3월 이후부터 구스타브는 뉴포르 시리즈에서 가장 유명한 뉴포르 17을 설계했다. 뉴포르 11을 확대,발전시킨 뉴포르 17은 무장도 강력해지고, 속도도 빨라졌다. 성능이 개선된 뉴포르 17은 전장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었고, 곧 연합군의 주력 전투기가 되었다.

 

뉴포르 17은 스파드(SPAD) Ⅶ기가 등장하기 전까지 연합군에서 가장 우수한 전투기 중 하나였다. 뉴포르 17은 프랑스.영국.네덜란드.벨기에.러시아.이탈리아군에 소속되어 참전했고, 영국 에이스 앨버트 볼(Albert Ball)과 윌리엄 에이버리 "빌리" 비숍(William Avery "Billy" Bishop), 그리고 프랑스 에이스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기종인이었다.

 

구스타브는 뉴포르 24와 27을 계속 제작했지만, 신형 전투기인 스파드의 등장으로 배치되지는 못했다. 대신 미국이 뉴포르 24와 27을 훈련기로 구입하여 약 400대를 운용한 바 있다. 이후에 등장한 뉴포르 28은 기존 설계에서 벗어난 전투기였지만, 이 역시 미국이 297대를 구입하여 전쟁 마지막 두 달 동안 전선에 투입했다. 1920년대에 제작된 뉴포르 29는 전장에 투입되지는 못했지만, 강력한 직렬형 엔진과 유선형 동체로 주목을 받았다. 훗날 프랑스, 벨기에, 스위스, 일본 등에서 사용되었다.

 

 

뉴포르 29

 

 

동조장치를 적용한 전방발사 기관총을 전투기에 장착하게 된 연합군은 이 시기에 항공공학적으로 가장 세련된 스파드 Ⅶ의 활약으로 제공권을 장악하게 된다. 연합군이 제공권을 탈환하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한 스파드 전투기인 A.2기가 제작되었다. 스파드는 처음부터 성공적인 기종은 아니었다. 복엽기 스타일에 엔진 앞쪽에 기총좌석이 있었고, 동승 조종사가 앉아 기관총을 사격하는 방식이었다. 이러한 방식은 그다지 실용적인 방식이 아니었기 때문에 약 100대 정도만이 프랑스 공군과 러시아에서 잠시 사용되었다.

 

동조장치를 사용한 스파드는 Ⅶ형이었다. 긴 직렬형 V-8 엔진은 앞쪽에 냉각장치가 있는 원통형 금속 덮개 안에 들어 있었다. 스파드 Ⅶ형의 시제기는 1916년 4월에 첫 비행을 했다. 스파드는 최대속도 196km/h에 15분 만에 고도 3,000m에 도달하는 우수한 성능을 보였다. 그러자 프랑스는 즉시 268대를 주문했고, 1916년 9월 2일부터 실전배치하기 시작했다. 스파드 Ⅶ은 프랑스에서만 5,,600대가 생산되었고, 생산 라인이 체계화되면서 점차 연합군에 배치되기 시작했다.

 

 

스파드 ⅩⅢ

 

출력이 증가된 이스파노-수이자(Hispano-Suiza) 엔진을 탑재한 스파드 ⅩⅢ은 스파드 Ⅶ과 유사하지만, 전방발사 기관총을 2정 장착하여 화력이 보강되었다. 1917년 4월 4일에 첫 비행을 한 스파드 ⅩⅢ은 곧 초기형 스파드와 프랑스 공군의 뉴포르 시리즈를 대체하게 되었다. 부대 배치는 5월 말경 시작되었고, 오래 지나지 않아 80개 비행대가 스파드 ⅩⅢ을 운용하기 시작했다. 스파드 시리즈와 프랑스 에이스들은 공조로 제공권은 다시 연합군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스파드 ⅩⅢ은 미국, 벨기에, 영국, 이탈리아의 총 11개 비행대에 배치되었고, 8,472대 생산이라는 경리적인 기록을 남겼다.

 

 

출처 : 전투기의 이해(임상민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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